1. 말씀묵상
자식이 겪는 고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녀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다 할 것입니다. 몸이 아프면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닐 것이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부모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해결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자식과 부모는 한 마음이고 한 몸이며 영원히 이어지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인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시는 고통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고통과 같을 것이라고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합니다. 스가랴서 1장에서 8장까지는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선지자의 메시지가 선포되며 9장에서 14장까지는 먼 훗날 일어날 일의 예언입니다. 그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절과 3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선지자가 예언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보잘것없고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주변 열강들이 차지하려고 모일 것입니다. 만만하게 보고 달려듭니다. 그렇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단숨에 마셔버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취해서 비틀거릴 것입니다. 가볍게 보고 던져 버리려고 들었지만 오히려 무거워서 크게 몸이 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나라요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고 모든 민족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선지자 스라갸가 예언한 이후에도 유다를 치려는 민족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다를 정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 탄 자를 쳐서 넘어뜨리고 그들을 무너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돌보시기 때문에 이방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이방으로부터 지키고 구원하시는 일에는 원칙과 순서가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먼저 민족과 공동체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다윗의 장막은 왕족입니다. 그들이 존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개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민족이고 그들이 이룬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영광과 구원을 민족과 공동체의 영광과 구원보다 앞세우지 않습니다.
이는 오늘 이 시대 교회 공동체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지극히 사랑하시되 개인보다 우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성도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프랑스 국왕이었던 태양 왕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이 보실 때 존귀한 자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보다 교회 공동체의 백성들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독생자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고통당하고 찔림 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고통이요 하나님의 애통함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본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무리들입니다. 장차 메시아를 찌를 유다 백성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찌를 것이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입니다. 아들의 고통을 보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당신이 찔림 받은 것처럼 고통 받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 고통은 하나님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백성들이 애통해 하고 눈물 흘릴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도 고통을 받으시는가?” 하나님도 당연히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고통은 피조물이 당하는 고통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과 하나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 고통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고통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마음에 믿고 행하지 않으면 그 고통은 하나님께서 고스란히 받으십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인 우리가 어찌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말과 행동, 이 땅에서 죄 짓는 모든 행위가 지금도 하나님께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우리와 상호 소통하는 분이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행동과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기쁨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부모와 자녀는 이어진 존재입니다. 이렇듯 인격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표정과 말 한마디, 행동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기쁘게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하고 애통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시절 많은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모질게 주님을 박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 영광 드리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고 주님을 핍박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찌른 백성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우리의 행동과 말투까지 하나님께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우리의 행동과 말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2) 거룩한 행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안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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