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동물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새끼를 낳은 어미의 모성애가 지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만이 아니라 곤충까지도 얼마나 자기 새끼를 사랑으로 돌보는지 모릅니다. 새끼는 본능적으로 어미를 알아봅니다. 어미를 통해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어미를 통해서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극진히 새끼를 돌보며 사냥한 먹이를 먹입니다. 어미는 새끼가 장성할 때까지 품고 거두어줍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부모를 본능적으로 알고 따릅니다. 그들이 성장해서 부모의 품을 떠날 때까지 그 안에서 돌봄을 받습니다.
육체의 세계가 이렇다면 영적인 세계는 어떠하겠습니까? 우리 영혼의 생존, 영혼의 거듭남을 위해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성경은 당연히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2절과 3절 말씀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이 말은 짧은 말씀이지만 깊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양이 목자를 따르는 것, 우리가 목자 되신 주님을 따르는 것은 눈으로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들음으로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목자와 목자인 척 하는 사람의 차이는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목자인 척 하는 사람은 화려한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것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마치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이 예수님을 높은 곳에 세우고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 한 것처럼 사탄은 오늘도 거짓목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세상 모든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합니다. 봄으로써 따름을 유도하는 자는 참 목자가 아니고 목자인 척 하는 사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참 목자가 되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 주의 말씀을 듣고 따를 만한 말씀임을 알고 그 말씀을 따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 하신 사역을 한마디로 말하면 말씀사역이었습니다. 무리를 대상으로도 말씀 하셨고 12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들에게도 말씀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가셔서 여인과 일대일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그 자체로 말씀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 사역이 100% 따름으로 열매 맺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참 목자로 알고 따른 양도 있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치 세상으로 떠나버린 사람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 중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아버렸습니다. 귀가 있다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들었다고 마음으로 듣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고 따름이 있어야 진정한 제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양이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주의 말씀을 듣고 지금도 주님 말씀을 듣고 있는데 과연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 돌이켜 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3절 말씀에서 목자는 양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목자는 양을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관계성을 맺는다는 뜻입니다.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집단으로 취급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일대일의 관계를 맺어주셨습니다. 세리나 창기, 가난한 자에게 못 배운 자에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에게도 주님은 각각 일대일의 관계를 맺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주님과 깊은 관계가 쌓여갔습니다. 주님과 그들만의 사연이 만들어져 갔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일대일의 관계로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을 만난 우리는 사연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내 기도에 이렇게 응답해주셨고 주님께서 나의 삶을 이렇게 바꿔 주셨다는 사연이 넘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열 명, 혹은 백 명 그 이상의 단위로 취급하지 않고 우리 이름을 각각 불러주십니다. 내가 너를 알고 내가 너를 극진히 사랑하고 지금도 너와 함께 있노라 하시며 주님은 우리를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십니다.
이렇게 인도하여 내신 후 주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주님은 각각 우리를 불러내신 후에 앞서 가십니다. 주님이 앞서가신다는 것은 모범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말로 끝내지 않으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직접 앞장서 가시고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십자가를 나중에 질 테니 너희들이 먼저 십자가를 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솔선수범하시고 먼저 걸어가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광야길, 사막 길을 앞서 가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먼저 그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앞서 가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난관, 어려움은 내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먼저 가시고 십자가의 고통까지 감내하셨으니 뒤따라오는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힘내라 응원하시고 업고 가실 것입니다. 그런 주님께 우리 속마음을 터놓고 주님 손잡고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시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생명입니다. 생명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가시고 우리가 그 뒤를 따라가면 끝에는 반드시 생명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지도자가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세상의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돈이나 권력밖에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한낱 사라지는 신기루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건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불꽃처럼 힘을 잃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방식이 특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주님이 선한 목자가 되어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이 임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이 세상 누구도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만이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그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온전히 버리신 주님을 따르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진실로 주님을 따르는 양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주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가? 세상에는 목자인 척 하는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혹시 그것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도 살피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양은 목자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하는 존재이므로 주님 말씀에 귀를 잘 기울이겠습니다.
2) 묵숨을 버려 생명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연약하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주님 기뻐 하시는 일을 하게 하옵소서.
성경별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
21 | (요한복음 21장) 그물을 채우려면 | 정지훈 | 2021-02-05 | 865 |
20 | (요한복음 20장)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정지훈 | 2021-02-04 | 852 |
19 | (요한복음 19장) 마리아의 고통 | 정지훈 | 2021-02-03 | 780 |
18 | (요한복음 18장) 칼을 칼집에 꽂으라 | 정지훈 | 2021-02-02 | 742 |
17 | (요한복음 17장) 제자들을 위한 기도 | 정지훈 | 2021-02-01 | 951 |
16 | (요한복음 16장) 성령님이 오시면 | 정지훈 | 2021-01-29 | 668 |
15 |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와 가지 | 정지훈 | 2021-01-28 | 1285 |
14 | (요한복음 14장) 질문하는 인생 | 정지훈 | 2021-01-27 | 795 |
13 | (요한복음 13장) 자존심 꺾기 | 정지훈 | 2021-01-26 | 833 |
12 | (요한복음 12장) 향기로운 인생 | 정지훈 | 2021-01-25 | 1100 |
11 | (요한복음 11장)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 정지훈 | 2021-01-22 | 1239 |
10 | (요한복음 10장) 양과 목자 | 정지훈 | 2021-01-21 | 1003 |
9 | (요한복음 9장)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정지훈 | 2021-01-20 | 1239 |
8 | (요한복음 8장) 집행유예 | 정지훈 | 2021-01-19 | 792 |
7 | (요한복음 7장) 하나님의 때 | 정지훈 | 2021-01-18 | 10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