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

(사도행전 14장) 포기하지 않는 열정
2021-02-25 06:50:00
정지훈
조회수   1166

1. 말씀묵상

발명왕이라고 하면 우리는 에디슨을 떠올립니다. 에디슨은 발명왕이고 발명왕은 에디슨입니다. 에디슨이 가지고 있던 특허가 천여 건이 넘기 때문에 그를 발명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가 발명한 많은 물건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것이 전구였습니다.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그는 수 천 번에 걸친 실패를 거듭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실패라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의 과정이었고 실험일 뿐이지 이게 왜 실패냐고 오히려 반문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과 에디슨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여러 번의 실패가 있으면 포기해버립니다. 내 적성이 아니니 더 잘할 수 있는 길을 택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디슨은 될 때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천재가 아니라 미련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포기를 모르고 어리석고 때로는 우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갑니다.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사람들을 보면 에디슨같이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 저돌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나바와 바울, 이 두 사람은 포기를 모르고 역경을 극복하는 믿음의 사람,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복음은 역사를 만들었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기둥 같은 두 일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웠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그들을 파송했습니다. 수행원으로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마가 요한은 중간에서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서 비디시아 안디옥으로 가는 길이 험하고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부잣집에서 나고 자란 마가 요한은 그 험한 길을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제 두 사람 바나바와 사울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바울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인데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한 야망을 가지고 살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복음 앞에서 작은 자로 살아가라는 의미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 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영적 지도력은 바나바에게서 바울로 넘어갑니다. 그들은 타우루스 산맥을 지나서 비디시아 안디옥으로, 비디시아 안디옥을 지나서 이고니온으로, 이고니온에서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복음은 회색지대가 없습니다. 따르든지 따르지 않든지 양자택일만 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몇 주간 전했던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따르는 사람도 있고 극단적인 유대주의에 심취해서 그들을 돌로 치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이에 이고니온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어서 두 사람은 루스드라와 더베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날 때부터 한 번도 걷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를 주목하여 보니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를 고쳐주었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당시 그 지역 사람들은 그리스 신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날 때부터 한 번도 걷지 못한 사람을 고쳐주자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그리스의 신들이라고 여겼습니다. 바나바는 제우스,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에게 제사하려 했으나 바울이 이를 극구 말립니다. 14절과 15절을 보십시오.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벌이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바울은 군중들을 겨우 진정시켰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바울일행을 돌로 치려했던 사람들이 여기까지 몰려온 것입니다. 이들이 몰려와서 무리를 충동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을 어지럽히는 자들이니 돌로 쳐서 죽임이 마땅하다고 충동질했습니다. 충동 받은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돌을 던집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아직 복음을 전할 곳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1차 선교여행을 시작했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지금 여기서 죽으면 이방을 위하여 택한 그릇 바울은 써보지도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바울이 일어난 이후의 행적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큰일을 당하면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으면 다시는 그 일을 하기가 두렵습니다. 겁이 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난 후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문을 닫고 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돌에 맞았지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서 더베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21절과 22절을 보십시오.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들은 지금까지 선교여정의 역순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더베에서 루스드라로 이고니온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이 전한 복음에 헌신하겠다고 결단한 제자들을 굳게 세웠습니다.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말했습니다. 우리가 돌에 맞아서 죽을 뻔했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이 정도 환난은 겪어야 되는 것이라고 제자들을 굳세게 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루스드라에는 그들을 돌로 친 사람들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돌이 날아와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피하지 않고 직면했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피하면 언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언제 이방인들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겠습니까? 두 사람은 1차 선교여행뿐 아니고 2차, 3차 선교여행 때마다 이곳을 지나갔습니다. 자기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 했던 그곳을 지나며 제자들을 믿음 위에 세웠습니다. 

우리는 오늘 두 사람의 믿음의 여정을 보면서 비겁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트라우마라는 이름으로 믿음 생활을 피해갑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피해가고 상처를 입은 집단도 피해갑니다. 봉사 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그 자리도 피해갑니다. 그렇게 해서는 어깨 펴고 믿음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직면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현장으로 들어가시고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거나 뒷걸음질 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하루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복음은 위대한 능력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이고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의 말씀을 가졌으니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마시고 돌파하여 최후승리 얻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여러가지 핑계를 대고 피하지 않겠습니다.

2) 복음을 전하는 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주님 사랑 안에서 거하고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능력을 가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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