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우리는 ‘팍스 로마나’ 라는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의 평화’라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부터 시작해서 다섯 명의 로마 황제가 이어서 통치하던 약 200여 년간의 시기를 로마의 평화라고 칭합니다. 이 기간은 로마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전 세계를 통치했던 시기였고 세계사적으로 큰 전쟁이 없었던 평화로운 시기였습니다. 평화의 시기에 로마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꽃 피울 수 있었고 로마 식민지로 살던 백성들도 안정과 번영을 누린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 과연 인간이 만든 평화가 진정한 평화일 수 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로마는 팍스 로마나를 이루기 위해서 그 이전에 수많은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팍스 로마나는 사람이 주도하고 평화였고 그 시간은 겨우 200년 정도 지속되었을 뿐 영원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팍스 로마나의 헛됨과 위선, 로마에 의한 평화의 본질적인 회의감을 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자신은 죄가 없으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벨릭스는 이중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을 채찍질할 수도 그를 죽일 수도 없었기 때문에 구류해두고 뇌물을 기대하며 자주 불러서 이야기를 듣기만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유대인들의 마음도 얻기 위해서 바울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심문해보고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소요 사태를 일으킬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 구금해두고 세월만 보내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나 버렸습니다. 후임으로 베스도 총독이 부임합니다. 총독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은 다시 바울을 고발합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발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은 베스도에게 불려갑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유대인들은 총독이 바뀔 때마다 바울을 고발해서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법에 호소해서는 바울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이사랴에 구금되어 있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도록 압력을 가하고 길에서 바울을 죽이려고 결사대를 조직해 두고 있었습니다.
베스도도 그들의 음모를 알고 있는지라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을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대표자들을 가이사랴로 내려오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대표자들 앞에서 바울을 심문합니다. 베스도는 이렇게 묻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바울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베스도는 이전 총독 벨릭스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벨릭스도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죄 없는 바울을 2년 이상 가두고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본디오 빌라도 역시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애썼지만, 유대인들의 소리가 빌라도를 이겼습니다. 예수를 석방하지 말고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유대인들은 목청을 높였습니다. 순간 빌라도는 두려웠습니다. 여기서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 자신의 인사고과에 문제가 생길 것을 직감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손을 씻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했습니다. 지금 이 상황과 예수 그리스도의 상황이 다른 것은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고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만 다를 뿐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를 함부로 죽일 수가 없었기에 전직 총독 벨릭스와 현 총독 베스도가 이런 식으로 시간만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팍스 로마나의 실체입니다. 거짓이 정의를 삼키고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묶어두는 것이 로마의 평화의 실체입니다. 팍스 로마나는 이런 식으로 거짓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팍스 로마나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평화였습니다.
팍스 로마나 시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팍스 로마나 시기에 바울이 감옥에 잡혀 있었습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이루어진 이 시기를 우리는 로마의 평화라고 배웠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평화입니까?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거짓 위에 지은 위선과 가면의 평화일 뿐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재판받을 수 없다고 반발합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 대” 바울은 오랜 시간 이곳에 구금되어 있었으나 무죄한지 혹은 죄가 있는지 밝히지 못했으니 여기서 재판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가이사께 상소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로마에 가서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속주 식민지 총독에게 재판받지 않고 정식으로 로마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물론 로마에 가서 재판받는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결의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거짓된 평화 위에 서 있는 이곳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고 결단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팍스 로마나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샬롬의 평화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였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안은 샬롬의 평화였습니다. 주님이 주신 평화가 진정한 평화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인간의 죄와 죽음을 대신 지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돌아가셨고 사망 권세 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죄와 죽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도 죄와 죽음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것 때문에 영원한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십자가에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에게 샬롬의 평화를 주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일시적인 평화가 아니라 영원한 평화입니다. 오늘 우리는 팍스 로마나와 같이 거짓과 위선으로 위장된 평화를 누리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완전한 평화를 누리는 자들입니다.
지금 이 세상을 살펴보십시오. 전쟁이 없다고 평화롭다 말할 수 있습니까? 강대국들은 핵 억지력을 가지고 평화를 위장하고 있습니다. 핵을 가져야 평화로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불안한 평화입니다. 과연 이것을 진정한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력으로 통치되는 평화이지 진정한 평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으로 죄와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 위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거짓 평화에 속지 마시고 가짜 평화에 감격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서 온전한 평화를 누리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위장된 평화에 속지 않고 진정한 샬롬의 평화를 누리기 원합니다.
2) 주님이 주시는 샬롬의 평화 위에 복음의 집을 짓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부족한 백성들을 샬롬의 평화로 위로하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 평화 안에서 행복과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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