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체육 강국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시기를 지나면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국민들의 삶 속에 생활체육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생활체육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는데 88년 이후로 동네 마다 운동 시설이 들어서고 사람들은 직접 운동 하면서 자기만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공간만 있으면 탁구대를 설치하고 학생들과 청년들이 운동하도록 지원했습니다. 특히 중고생들은 시간만 있으면 탁구대 앞에 모였습니다. 탁구는 실력 좋은 사람과 조금 떨어지는 사람이 시합을 하게 될 때 실력 있는 사람이 몇 점을 접어주는 핸디캡 제도가 있습니다. 물론 생활 체육에서만 있는 제도입니다. 핸디캡이 있으면 경기는 박진감이 있습니다. 실력 좋은 사람도 몇 점을 먼저 주고 시작하니 끝까지 따라가야 하고 몇 점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은 그 점수를 지키려고 열심히 합니다. 탁구의 핸디캡 제도는 게임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고안한 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합에서 이기고 지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탁구 경기를 두 사람이 얼마나 재미있게 풀어가고 즐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스포츠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스포츠의 원리는 경쟁이 아니라 즐기는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즐기는 과정을 통해서 건강을 얻는 것이 중요한 원리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렇게 원리가 존재하는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에는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세밀하고 섬세한 원리가 녹아 있습니다. 특히 사람을 창조하신 장면은 더욱 놀랍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토기장이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부터 신약의 바울까지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하는 것은 성경의 일관된 흐름입니다. 오늘 바울은 창조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토기장이가 어떤 그릇은 귀하게 쓸 그릇을 만들고 어떤 그릇은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듭니다. 이것은 토기장이의 고유한 주권입니다. 그런데 그릇으로 빚어진 우리가 토기장이에게 나는 왜 이렇게 천한 그릇으로 만들었습니까 따질 수 없습니다. 가정 살림살이 그릇 중에도 어떤 것은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고이 모셔두는 것이 있고 어떤 그릇은 식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내어 놓는 그릇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릇 입장에서 토기장이에게 따져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권자의 능력과 주권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습니까?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 나는 왜 이런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 능력이 탁월하게 창조하셨다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을 텐데 저는 왜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한 적은 없습니까?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원망했다면 우리는 ‘귀한 그릇, 천한 그릇’의 관점으로만 사람을 보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천편일률적으로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조금 많고, 어떤 사람은 능력이 조금 떨어지고, 어떤 사람은 신체적인 기능이 탁월하고, 어떤 사람은 기능이 조금 약합니다. 귀한 그릇인가 천한 그릇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얼마나 깨끗한 그릇인가, 얼마나 정결한 그릇인가 하는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0절, 2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우리가 깨끗한 그릇이 되면 귀하게 쓰임 받고 선한 일에 준비될 것입니다. 창조주는 귀한 그릇, 천한 그릇을 만들 주권이 있습니다. 그릇으로 빚어진 우리는 창조주에게 나를 왜 이 모양 이 꼴로 빚었느냐 따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주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나’라는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서 주인의 손에 자주 들려 쓰임 받도록 준비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깨끗한 그릇입니까?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됩니다. 나는 귀한 그릇인가 천한 그릇인가가 아니라 나는 얼마나 정결하고 깨끗한 그릇인가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귀한 그릇 천한 그릇 문제를 붙들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우리 스스로 깨끗하고 정결한 그릇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을 탓합니다. 환경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런 환경에 두셨는가? 원망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이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 받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입니다.
그렇다면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회개한 사람입니다. 죄로 따지면 다윗의 죄가 더 큰 죄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매 순간 자신을 돌이키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회개하는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회개한 이후 말씀으로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말씀과 기도, 회개, 이 세 가지는 우리 자신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닦는 귀한 세제입니다.
오늘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정결해집니다.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2. 실천다짐
1) 귀한 그릇, 천한 그릇에 매이지 않겠습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깨끗한 그릇으로 매일 회개하고 말씀 앞에서 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매일 회개하는 인생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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