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

(로마서 10장)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2021-03-31 06:50:00
정지훈
조회수   1060

1. 말씀묵상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5년 임기의 유엔사무총장을 연임해서 10년 재임하신 분입니다. 이 분은 재임기간 동안 세계무대에서 각국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쳤습니다. 그 분이 영어로 연설하신 내용은 주옥같은 연설문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영어발음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다지 유창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요즘 영어하는 젊은이들의 발음은 상당히 유창합니다. 하지만 반기문 총장의 영어발음과 오늘 젊은이들의 발음을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반 총장은 원어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충청도 시골에서 홀로 독학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외국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면서 많은 돈을 투자하며 배웠습니다. 그들과 반 총장의 발음을 어떻게 단순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모든 일은 이렇게 상황과 정황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서 비교해야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생활과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선조들의 신앙생활을 단순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성수했다는 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성도들이 주일을 성수했다는 말은 고난의 정도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시절 신앙성수는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었고 오늘 우리 시대 신앙성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해서 오류를 범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시대정신을 제외하고 단순히 문자적으로만 성경을 읽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오랜 세월동안 많은 신앙의 조상들이 그 시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낸 믿음과 역경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적 배경을 빼버리고 오늘 우리의 눈높이로 성경을 읽게 되면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전하는 말씀도 역시 당시 로마 시대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읽어야 합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구원과 연관되어 있다고 전합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 이 두 가지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말씀합니다. 과연 이 말씀을 오늘의 상황으로 읽어도 되겠습니까? 바울은 이어서 같은 말씀을 반복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많은 사람들은 시대적 상황을 제외하고 이 말씀만 강조합니다. 어떤 전도대상자를 앞에 두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예수를 시인하라. 그러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말씀을 적용하는 것은 로마 시대 상황에 무지한 결과입니다. 로마는 황제가 다스리던 나라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식민지 통치에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관용 이전에 한 가지 전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황제숭배였습니다. 통치하는 나라마다 곳곳에 황제 숭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 곳에 가서 황제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황제를 퀴리오스라고 부르게 하였습니다. 퀴리오스는 우리가 ‘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 로마 시대의 주는 바로 로마 황제였습니다. 황제를 퀴리오스로 부르지 않고 황제 숭배를 하지 않으면 핍박이 주어집니다. 모진 고문이 이어집니다.

그런 엄중한 시절에 로마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편지를 보내면서 너희가 구원받은 백성이 되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예수를 퀴리오스라고 선언하라. 그것도 너 스스로 아무도 없는 공간이 아닌 믿음의 공동체 백성들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예수를 주님이라고 선언하라. 그러면 너는 구원받은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믿음의 고백을 듣는 공동체 사람들 중에 밀고자가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것은 목숨을 건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죄목이 무엇입니까?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할 때 한 가지만 질문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 때 십자가에 적힌 명패가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를 퀴리오스라고 부르지 않고 자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죽은 예수를 퀴리오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로마의 심장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로마 당국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들을 색출해서 죽이지 않겠습니까? 당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것은 목숨을 건 그들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을 지나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어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를 숭배하기 위해 만든 로마의 계획도시였습니다. 도시 곳곳에 황제의 동상과 흉상이 서 있고 황제를 섬길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당시의 문법으로 이 말씀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전혀 다르게 와 닿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삶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로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고 있습니까? 일터에서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아닌 돈을 주인으로 모시고 욕망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척결하고 삶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고 주님에게 매여 사는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는 것이고 성화는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서 거룩하게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삶으로 예수를 고백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확증하며 삶으로 드러내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입이 아닌 삶으로 주님을 드러내겠습니다.

2) 오늘 이 시대에 삶이 바탕이 되지 않는 신앙생활을 정리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삶으로 드러내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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