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

(갈라디아서 2장) 자유
2021-05-21 06:50:00
정지훈
조회수   807

1. 말씀묵상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동물을 창조하실 때와 달리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위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동식물에게는 본능과 환경에 따라 살아가도록 미리 프로그램 해 두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고 자유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배려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하나님을 거부할 수도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단하셨습니다. 강요된 자유, 강요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고 싶은 갈등까지 누르고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고 하나님을 참된 주인으로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창조된 자이므로 우리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유를 선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끼리,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여백을 선물할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연인, 부부사이에 누구와 어떤 문자를 주고받았는지 간섭하고 숨 막히게 한다면 사랑을 빙자한 폭력입니다. 사랑에 여백을 더할 때 그 사랑은 더 의미 있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곳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가 교회 안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표현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유를 선물로 주셨는데 유대에서 온 어떤 이들이 자유를 빼앗아 간 것을 개탄하며 두 가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할 때 복음과 자유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유대에서 온 율법주의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급속도로 퍼졌고 갈라디아 교인들은 할례 율법에 묶여 자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가 겪은 두 가지 사건을 설명하며 교회가 자유 안에 거해야 함을 설명합니다. 먼저 첫 번째 사건입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디도는 헬라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올라가면서 디도에게 할례를 받도록 권하지 않았습니다. 할례가 구원의 여부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는다고 구원받는 것도 아니요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구원에서 소외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바울이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않도록 하고 그를 예루살렘에 데려간 이유가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바울 당시에 할례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이방인들이야 말로 할례 받아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할례 받지 않은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도 이상한 것들로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매여 있어야 될 것은 오직 한 가지 복음밖에 없습니다. 복음은 곧 본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그 사실에만 매여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직분과 사람의 시선, 헌금 액수 등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복음 이외의 것들은 모두 비본질적인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 안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에만 매여 있다면 다른 것에서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비본질에 매여서 복음을 복음 되게 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을 자초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뿐만 아니라 함께 믿음 생활하는 자들에게도 본질이 아닌 다른 것들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성도들은 교회에서 답답함을 느낍니다. 신경 써야 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오직 말씀에만 신경 쓰면 되는데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교회에서 숨 막혀 죽을 것 같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는 할례를 받건 받지 않건, 어떤 복장으로 다니건 우리의 구원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경험한 두 번째 사건을 말합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이 목회하고 있을 때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베드로가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베드로의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이끄는 사도 중의 사도,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아닙니까? 그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고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베드로를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이방인으로 있다가 개종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베드로가 식탁교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유대인 율법에는 반하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식사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하는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11절에서 13절을 보십시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야고보에서 온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다른 무리를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어떤 무리가 안디옥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들에게 자신이 이방인들과 식탁교제 하는 것을 보이기 두려웠습니다. 그는 식탁교제 자리에서 나가버렸습니다. 그 자리에 동석하고 있었던 바나바도 베드로의 행동에 동조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분노하게 했고 바울은 이들의 행위를 외식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베드로의 면전에서 책망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지도자인 베드로조차도 이방인과 식탁교제 하는 것을 이렇게 불편하게 여기는데 그와 함께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바울은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이토록 중요한데 여전히 교회 공동체 성도 스스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율법에 매여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여 있던 것이 죄와 죽음 아닙니까? 죄 문제에서 자유하지 못했고 죽음에서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었고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와 죽음에서 자유함을 얻었는데 다른 것에 매여 있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는 복음 안에서 자유하시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주의 백성들에게도 자유를 선물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본질 때문에 형제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어리석은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께서 주시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복음 안에서 본질인 자유를 누리겠습니다.

2) 함께 하는 분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주신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며 함께 하는 분들에게도 자유를 선물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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