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그를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선지자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부터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를 깊이 알고 인격적으로 교제하면서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바울은 예수님 밖에 있을 때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 우리는 소망이 없는 외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 모든 사람은 별 다른 인생 목표가 없습니다. 인생이 유한하다고 느낍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돈을 많이 모아서 폼 나고 멋지게 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됩니다. 돈 벌기 위해서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비슷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모두 믿음의 백성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몸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해방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날을 기대하며 누가 크냐 하는 분쟁을 하고 살았습니다. 영광의 날이 이를 때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에게 더 많은 영광과 물질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예수님은 피 흘린 분이십니다. 피는 곧 희생이고 죽음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이 나를 위해서 죽어줄 수 있습니까? 부모라도 자식을 위해서 기꺼이 죽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해서 피 흘리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 그들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영적으로 변화되는 계기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피 흘리셨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일 때부터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피 흘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예수님의 피 흘리신 이유는 화평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은 원래 지성소와 성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기준은 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육체가 찢어지시는 그날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때부터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휘장이 가로막혀 있을 때는 대제사장 한 사람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율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성소와 지성소의 구별이 무너졌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무너졌음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신 것, 자신의 육체로 둘이 된 것을 하나로 만드신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담이 없어야 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귑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장벽이 없고 화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화평하지 않고 분열하고 담을 세우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출신, 학벌, 성별, 정치적 성향이 달라서 함께 할 수 없다고 담을 쌓는 사람은 예수님 제대로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벽이 없어야 하며 어떤 사람도 받아들이고 용납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17절을 보십시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평화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권세를 가지면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시절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역시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곧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는데 예수님에게서 정치적 메시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에게서 해방되면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십시오. 일제 36년의 만행에서 해방되었지만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얻었습니까? 찬탁과 반탁으로 나라가 조각났고 6.25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해방되었지만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평화가 오려면 죄와 죽음의 문제가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립니다.
이어서 20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모퉁이 돌은 돌과 돌을 연결하는 돌이며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간판이 되시지 않고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모퉁잇돌을 통하여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교회가 되어갑니다. 21절과 22절을 보십시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취미가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서로 손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퉁잇돌이 되셔서 나와 너를 연결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신앙을 공유하고 신앙 간증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교회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직업, 출신 지역에 따라 따로 모이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셔서 그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악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은 자로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2) 서로 다른 사람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며 그 안에서 자유와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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