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심리학 이론 중에 ‘강화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강화이론 안에는 ‘적극적 강화’와 ‘부정적 강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상을 주고 격려해서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적극적인 강화입니다. 반면에 분위기를 해치고 바람직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다시는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벌을 주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을 부정적 강화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직장인이 회사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내어 회사에 이익을 끼치면 그에게는 포상과 승진을 줍니다. 이는 적극적인 강화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분위기를 해치고 회사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은 징계를 줍니다. 이는 부정적인 강화입니다. 그런데 적극적 강화를 지지하는 사람이나 부정적 강화를 지지하는 사람 모두가 도대체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지속해야 되는지 고민에 빠집니다. 상을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상을 줄 수 없습니다. 벌을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교묘히 분위기를 저해하는 사람들까지 일일이 찾아내서 벌을 주고 징계를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상과 벌 때문에 일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힘은 다른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 힘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쓴 서신서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신약 성경 27권 중에 13권의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그 가운데 디모데후서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이자 목회서신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AD 66년경 로마 감옥에서 기록했습니다. 이때는 이전에 로마 감옥에 투옥 되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이전에 바울이 경험한 로마감옥은 가택연금이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 말씀을 가르칩니다. 편지도 자유롭게 썼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디모데후서를 쓸 때는 순교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했습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그가 쓴 12권의 서신에서 ‘은혜와 평강’을 언급했습니다. 빠지지 않고 서신 첫 머리마다 은혜와 평강을 언급했는데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에서는 긍휼도 함께 언급합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일생을 지탱하고 있었던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은혜와 평강이었습니다.
은혜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려주셔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은혜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통해서 누리는 것이 평강입니다. 바울은 평생 동안 하나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와 그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의 평강을 가지고 열심히 복음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생이 끝나는 시점에 은혜와 평강에 긍휼을 덧붙입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긍휼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바울이 일생을 돌아보니 자신의 일생은 자격 없는 사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핍박자요, 그리스도의 반대자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서 옥에 넘기고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서 순교할 때 돌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지켜 주었던 살인의 동조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을 택하시고 복음 전도자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였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긍휼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긍휼을 입은 자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아보면 죄인이고 악한 사람이고 지금도 죄에 넘어지고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해 주신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바울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이 땅에서의 상도 아니었고 벌 받을 두려움도 아니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었음을 디모데에게 알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입은 자에게 큰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7절과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지금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을지, 많은 크리스천처럼 맹수에게 물려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은혜와 긍휼을 입어서 마음속에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은혜와 평강, 긍휼을 받기 전에는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은혜와 평강, 긍휼을 입은 후 천국을 보장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어떤 위험도 그를 두렵게 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건, 짐승에게 물려 죽건, 그것은 그에게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오직 사랑과 능력과 절제하는 마음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고난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면 고난 받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고난을 하나님의 은혜로 붙잡고 사명을 잘 감당했다고 말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이 땅에서는 고난 받아도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바울은 받은 사명을 감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너도 이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교사로 선포자로 열심히 살아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세속적인 상이나 벌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긍휼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누리는 평안이었습니다. 천국을 보장받은 기쁨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무릎 꿇게 하는 힘이 무엇입니까?
오직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부족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사실이 오늘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그 힘과 능력을 가지고 오늘도 세상 가운데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긍휼로 평강을 누리겠습니다.
2)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이 세상을 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상과 벌 때문이 아니라 은혜와 긍휼을 통해서 주시는 평강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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