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사람은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동시에 하늘을 보고 사는 존재입니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말은 보다 나은 가치를 지향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가치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뜻은 죄악된 세상 가운데 분투하지만 먼지를 묻히고 살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현실을 뜻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과 보이는 현실 가운데 여러분은 주로 무엇을 선택하십니까? 어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이상을 추구하고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사람들은 이상을 추구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것을 갈망하고 하늘의 가치를 마음에 두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이 볼 때 그런 인생은 고단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굳이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가치를 갈망하며 사는 분들은 나름대로 보람과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실 크고 영원한 집이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이 땅에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면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런 교회 정체성을 성도들에게 일깨우면서 성도들이 어떤 자세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줍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교회를 ‘바벨론에 있는 교회’라고 규정합니다. 바벨론이 어떤 곳입니까? 유대인들에게 바벨론은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기원전 586년 유다에 쳐들어와서 성전을 불태우고 모든 그릇을 약탈해 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불태우고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베드로가 목회하고 있던 시절 성도들은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불렀습니다. 로마가 그 옛날 바벨론처럼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바벨론에 있다고 베드로가 표현한 것은 로마제국의 틀 안에 교회가 뿌리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라는 틀 안에 교회가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성도들은 영적인 가치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로마는 당시 황제 숭배를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면 로마 시민으로 사는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황제에게 무릎 꿇지 않고 숭배하지 않으면 장사할 수 없었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없었으며 사회생활은 불가능했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에 있는 성도들의 고민이었습니다.
이제 바벨론, 즉 로마 사회에 있는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베드로가 알려 줍니다. 우선 성도들끼리 하나가 될 것을 주문합니다. 장로들에게 부탁합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말하는 장로는 직책상의 장로인 동시에 교회에서 존경받는 어른들을 함포함하는 말입니다. ‘기꺼이 하라.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라.’ 즉, 요즘 말로 하면 꼰대 같은 어른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른들은 교회 공동체 젊은이들과 이제 막 신앙을 가지기 시작한 자들을 성심껏 섬겨주고 그들에게 입이 아닌 삶으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성도들은 당시 로마 사회에서도 살기 어려운데 교회 장로라는 분들이 성도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그들의 말과 행실이 다르다면 어떻게 믿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믿고 장로의 직분을 받은 자들이 양 무리의 본을 보이고 제대로 살아야 교회가 단단해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런 장로들을 경험하는 젊은이들에게 부탁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장로들이 먼저 모범을 보일 때 젊은이들은 장로들을 존경하고 겸손함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이 말은 교회 안에서 갈등의 소지를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대 간의 갈등, 남녀의 갈등, 출신 지역 간의 갈등, 직업의 빈부귀천을 따지는 갈등으로 교회가 분열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살이도 힘든데 교회가 분열되면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겠습니까?
오늘 이 땅의 교회도 악한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동시에 하늘의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도들은 세상과는 다른 공동체를 기대하고 왔는데 먼저 믿은 목회자와 장로들의 말과 행실이 다를 때 실망감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마음을 두고 영적인 힘을 얻으려고 했는데 교회가 성도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도들을 먼저 위로하기 위해서는 성도들 안에 갈등의 소지를 없애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말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당시 성도들의 염려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염려는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황제 숭배를 하지 않으면 표를 받을 수 없고 표를 받지 않으면 먹고 사는 일에 상당한 지장을 받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표를 짐승의 표라고 말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염려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면 그가 너희를 돌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을 섬길 때 산상수훈 말씀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의지하는 자들을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염려를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도 역시 염려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염려 중 대부분은 먹고 사는 문제와 가족에 대한 것입니다. 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벨론에 살지만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8절을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바벨론에 사는 성도들은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에서 우는 사자 같은 악한 사탄 마귀가 우리를 집어 삼킬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도 근신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사탄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하늘을 보며 살겠습니다.
2) 염려하지 않고 악에 물들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나아갈 바를 알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 땅을 지혜롭게 살아가려 하오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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