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누군가를 아는 것과 깊이 사귀어 마음을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서 깊은 사귀어 보면 보이는 것과 아주 다른 모습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겉모습이 좋아 보여서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막상 깊이 사귄 후에 실망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별로였는데 깊이 사귀어 보니 결혼을 약속하고 장래를 꿈꾸어도 될 정도로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방 들고 교회 다닌 세월이 수십 년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하나님과 사귀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 가운데 있는지, 혹시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의 사귐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절을 보십시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1장에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기록했습니다. 요한은 태초에 있는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듣고 보고 만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할 만큼 예수님은 요한을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후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할 만큼 주님은 요한을 믿고 의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귐이 요한 자신에게 그치지 않고 이 편지를 읽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도 함께 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한다’는 말씀은 성도들 간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성도들끼리 교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귐의 첫 번째 의미를 발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귄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가운데 두고 성도들과 깊은 교제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교제와 성도들의 교제가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믿지 않는 친구들과 교제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운데 두지 않습니다. 그들과는 세상의 관심사를 함께 나눕니다. 그런데 간혹 교회 공동체에서도 세상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운데 있지 않고 세속적인 이야기, 세상 이야기로만 일관하다가 끝낼 때가 있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정치 이야기, 주식이야기, 자녀이야기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헤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닙니다. 말씀 없이 교제하는 것은 성도의 교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은 것, 읽은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 감동 받은 것, 앞으로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결단한 것을 깊이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요, 동시에 성도와도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도 요한이 말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둠은 죄입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은 죄를 멀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귐이 깊어질수록 죄에서 떠나고 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귄다 하면서도 뒤로 돌아서서 죄를 짓고 죄의 은밀한 낙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귀면 왜 죄를 멀리하게 될까요? 하나님의 본성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본성 자체가 빛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어떻게 어둠 가운데 행할 수 있겠습니까?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고 나아가면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빛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기 때문에 나에게 얼룩은 없는지 죄는 없는지 계속 비추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그리스도도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과 깊이 교제하다 보면 말씀의 거울에 우리를 비추게 됩니다. 비추어보면 나의 연약함과 완악함과 죄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러면 고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치지 않으면 빛 되신 주님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치면 당연히 빛 되신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존재인지 헷갈린다면 빛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죄를 멀리하고 있는지,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있는지 살펴보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말씀의 거울에 비추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사귐의 또 다른 의미를 설명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친구들과의 교제에도 고백이 필요합니다. 자기 속에 있는 비밀을 친구에게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친구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됩니다. 부부끼리도 깊은 교제와 사귐이 있으면 서로 감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사귀다 보면 우리 속에 있는 죄악된 생각들, 잘못 생각한 것들을 감추지 않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터놓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영광된 일입니까? 하나님 앞에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위로하고 때로는 책망도 하시고 다시 돌이키게 하시니 이것이 특권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죄를 고백하는 자리는 바로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에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하나님에 대해 느끼는 마음들을 다 털어놓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깊은 사귐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하나님과 교제하며 성도를 사랑하기 원합니다.
2) 빛되신 주님을 사랑하며 죄 짓지 않고 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사람을 사랑하고 죄에서 떠난 빛 가운데 나아가는 백성으로 살기 원하오니 거룩한 교제로 함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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