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간혹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빙자해서 집착에 가까운 병적인 증세를 보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확인합니다. 핸드폰을 체크하고 오늘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에 갔는지 확인합니다. 연인 사이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녀의 인간관계까지 일일이 간섭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빙자한 올가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이렇게 오해합니다.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주일날 교회 봉사하는 성도들을 보고 답답하게 교회에만 매여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런 식으로 억압하거나 간섭하거나 집착을 보이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말씀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과정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도 요한은 ‘그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종속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온전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포도나무 비유가 나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를 사도 요한은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먼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죄를 범해도 주님을 떠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연약하고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 뒤를 따라가다가 가끔 넘어지고 죄를 향하여 달려가고자 하는 욕망이 생깁니다. 그때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주님을 떠나지 말고 대언자 되신 예수님께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아뢰어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사탄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마음을 흔들고 괴롭게 만듭니다. 사탄이 우리를 참소합니다. 죄 의식을 심어줍니다. 사탄이 뿌려둔 가라지, 죄의식이 우리 속에 자리를 잡으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사탄은 죄를 통해서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대언자는 대신 말씀해 주시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변호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사가 되십니다.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참소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 하더라도 예수님께 모든 죄를 다 고백하면 주님은 우리를 대언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에 실패한 자들이 있습니다. 아담이 그랬고 가인이 그랬습니다. 선악과 범죄 이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지만 아담은 하나님을 피해서 숨어버렸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부끄러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인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끝까지 만류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에덴동편 놋 땅으로 떠나 성을 만들고 하나님을 피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죄를 짓고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주님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결해야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죄 문제도 해결하고 사탄이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것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두 번째로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여기에 오해가 많습니다. 기록된 말씀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그 말씀을 다 지켜서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처음부터 겁먹고 포기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율법의 짐을 지우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 율법을 단 두 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다시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됩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열 가지 계명을 다 이룬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어찌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어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있으며 안식일을 범할 수 있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부모를 사랑하고 간음과 살인과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속여 빼앗지도 않고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말씀 안에 거하라는 의미는 예수님의 사랑을 닮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내 마음 속에 사랑이 살아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은 누가 뭐라 해도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부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고 이웃도 많이 사랑하셔서 주님 사랑 안에 거하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그의 안에 거하는 길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첫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붙들고 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일곱 교회에 보냈는데 그 가운데 에베소 교회에 대한 말씀이 첫 사랑을 가지라는 책망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돌이켜 다시 시작해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첫 사랑의 뜨거운 열정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간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그 사랑과 흘린 눈물의 의미를 계속 가지고 가야 합니다. 때로 낙심하고 실망하고 믿음 생활이 견고하지 못할 때 다시 첫 사랑의 열정을 회복하고 처음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을 다시 붙잡고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한 것처럼 우리도 그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과연 나는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고 있는가? 예수님 안에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고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주님 안에 거하여 진실한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2) 죄를 지어도 떠나지 않고 말씀을 지키며 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으로 만족하기 원하오니 성령의 은혜로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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