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입으로 뱉는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은 말로 전달됩니다.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속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고 말했습니다. 언어는 우리 인격이 사는 집과 같다는 말입니다. 좋은 집에 사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한 사람의 말을 통해서 인격이라는 집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는 사람은 특별히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경우의 합당한 말을 하는 유다를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의 말을 보기 전에서 르우벤의 말부터 보겠습니다. 42장 3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지금 아버지 야곱과 나머지 아들들은 대치국면입니다. 요셉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 막내를 데리고 오지 아니하면 내가 시므온을 풀어주지 않겠다”하고 시므온을 억류한 상태입니다. 시므온은 이집트에 억류되어 있고 나머지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을 설득합니다. 그 때 큰 형 르우벤이 책임감을 가지고 아버지를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말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내가 만약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누군가가 우리에게 르우벤과 같은 이런 방식으로 나를 설득한다면 선뜻 응하시겠습니까? “그래, 베냐민을 못 데리고 오면 내가 네 아들을 죽이마. 베냐민을 데려가라”고 말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르우벤의 두 아들은 야곱에게는 손주들인데 만약 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못하면 손주를 죽이라니 이게 말입니까? 이렇게 말하는 르우벤에게 야곱은 마음을 닫습니다.
38절을 보시면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절대 안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르우벤은 어떤 사람입니까? 야곱에게는 큰 아들입니다. 비록 레아가 낳은 아들이지만 자신에게 첫 번째 아들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많은 정을 주었을까요? 그런데 르우벤은 성격이 급해서 한 번에 일어났다가 한 번에 식어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물이 끓는 것 같이 끓어올랐다가 내려앉는 사람이었습니다. 르우벤은 라헬이 야곱에게 준 첩 빌하와 통간하였습니다. 이런 인격을 가진 르우벤이 이런 극단적인 말을 해서는 절대 사람을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유다는 어떻게 설득합니까? 43장 8절과 9절입니다.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유다의 말을 들어보면 ‘만약 저 아이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아버지도 살고 우리도 살고 우리 자식들도 다 살 것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앞서 말했던 르우벤의 말과는 천지 차이 아닙니까? 르우벤은 죽음을 말하고 유다는 살림을 말합니다. 유다는 자신을 담보로 하겠다고까지 말합니다. 저를 믿고 아이를 보내 달라고 합니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13절과 14절입니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도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영특한 사람입니까? 야곱이 얼마나 사리 분별이 빠른 사람인데 이 상황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를 설득하는 자식들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하나는 죽임을 이야기하고 하나는 살림을 이야기합니다.
유다의 말이 우리 입술에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고 누구를 대하든 간에 긍정적인 말, 살리는 말은 우리 공동체를 살립니다. 자식들을 대할 때도 살리는 말, 긍정의 말, 회복의 말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줍니다. 야곱을 설득해야 되는 상황에서 하나는 부정과 죽임의 말을 이야기하고 하나는 긍정과 살림의 말을 하는데 결과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설득해야 될 때 긍정의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희생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르우벤은 자기의 두 아들을 희생시키는데 유다는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저렇게까지 하겠다는데 들어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오늘 우리도 계획된 일이 많이 있습니다. 만나야 될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처럼 지혜롭고 살리는 말을 통해서 나도 살고 모든 사람들도 살리는 은혜의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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