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에서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온 인류가 죄로 물들었고 한 분의 순종으로 모든 인류가 구원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오늘 분문에도 한 사람 때문에 온 가족이 구원 받게 되는 가족의 역사가 나옵니다. 작은 가족사이지만 성경 전체를 대표하는 보편적인 구속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다 한 사람의 희생이면 요셉의 마음을 감동시키는데 충분했습니다. 요셉에게 나머지 아홉 명의 마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한명의 희생이 요셉을 감동시키고 남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정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집을 살펴보면 한 사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믿지 않는 가문에 한 사람 며느리가 시집을 왔습니다. 아주 어리고 연약해서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꾸도 못하는 며느리가 시집을 왔습니다. 그 집은 불신 집안이었습니다. 어리고 연약하지만 예수 믿는 며느리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정 전체를 구원하신 사건은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며느리가 평생을 헌신하고 희생하고 눈물 흘리고 기도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의 눈물을 보시고 가정 전체를 구원하십니다.
혹시 우리 가정에서 나만 믿고 있어서 외로우신 분 있습니까? 그런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한 분을 통해서 이루실 구원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그 한 분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도 가정을 붙들고 계시고 그 한 분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도 심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섭리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에서 예정과 섭리는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예정은 구원의 영역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섭리는 우리 인생 전반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오늘 이 넥타이를 멜 것을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예정하셨습니까? 우리는 그런 것을 예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발을 다쳐 인대가 늘어났는데 깁스할 것을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예정하셨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예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시험에 합격할 것을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면, 왜 공부 하겠습니까? 시험에 합격할 것이 예정되어 있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겠습니까?
예정은 오직 구원의 영역에서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모든 인류를 구원으로 예정하셨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 버리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정은 구원의 영역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섭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내 인생을 돌아보고, 내 평생 살아온 일을 돌이켜 보고 나니, 당시 현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인도하셨음을 깨닫고 고백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의 손길로 해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섭리 신앙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팔아버렸는데 형들이 팔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요셉이 보여주는 섭리 신앙입니다. 본문말씀 7절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돌이켜 보니,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지금 와서 보니 하나님이 나도 구원하시고 형들도 구원하시고 우리 가족들을 살리시려고 나를 이리로 보내셨다는 고백입니다.
섭리 신앙을 가지지 않으면 잘못 된 것은 모두가 남 탓입니다. 내가 잘못된 것은 모두 부모 탓이고 내가 이렇게 사는 것도 형제 탓이고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전부 다 대통령 탓입니다. 이 시대는 남 탓하기 좋아하는 세대입니다. 사람을 혐오하고 가족을 정죄하고 나라를 불신하고 주변 모든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화를 표현합니다. 묻지마 범죄, 묻지마 살인 이런 것들은 섭리 신앙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반면 조금이라도 잘 된 것은 전부 자기 공로입니다. 내가 잘해서, 내가 노력해서, 내가 성실해서 이룬 것 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공로나 주변 사람들의 영향력이나, 하나님의 은총은 없습니다.
잘 훈련받은 섭리 신앙인은 일이 잘 못되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일이 꼬이고 넘어지는 현실이 내 눈앞에 보입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나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사는데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가?” “하나님 지금 나는 내 인생을 해석할 방법이 없는데 요셉처럼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보여주십시오.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 인생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섭리신앙입니다.
잘될 때도 내가 잘나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의 손길을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는 요 만큼 노력 했는데 하나님 이 만큼 도와주시니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인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든 걸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거 그게 또 섭리 신앙입니다.” 섭리 신앙을 가지고 살면 사람들과 원수를 맺지 않습니다. 섭리 신앙을 가지고 살면 아무리 억울해도 죽지 않습니다. 모든 것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데 내가 왜 억울합니까? 섭리 신앙을 가지면 교만하지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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