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사람들은 자기만의 성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집에 있는 장난감을 자기의 성역으로 여깁니다. 항상 혼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었는데 이웃의 아이가 놀러 와서 이 장난감을 만지면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집에 돌아갈 때 그 중 하나를 가지겠다고 떼를 씁니다. 엄마는 눈치도 없이 장난감을 줍니다. 그러면 너무 괴로워하고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상실감에 빠집니다. 자기만의 성역이 남에게 침범 당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사회에서 가지는 다양한 역할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역할, 사회 여러 공동체에서 가지는 다양한 역할, 교회에서도 직분을 가집니다. 그런데 유독 그 여러 가지 역할 행동들 중에 본인이 집착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의 자리에 집착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직분에, 어떤 이는 직장의 직책에 집착합니다. 그러다보니 그 자리가 어떤 사람에 의해서 침범 당한다고 느낄 때는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빼앗긴 것처럼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일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권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이 자식에게 불편한 말을 들으면 보통의 부모보다 더 화를 냅니다. 교회직분의 자리에 집착하는 분들도 그렇습니다. 감히 목사에게, 감히 장로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화를 냅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그 자리가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정체성이 자리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성역을 침범당한 것처럼 화를 냅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입고 있는 모든 역할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부모의 자리, 사회에서 주는 여러 직책, 교회 직분은 껍질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나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인데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값없이 내어 주셔서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고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정체성은 변할 수 없는 나 자신입니다.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희미해 지다보니 교회 직분이 곧 내가 되고 부모의 자리가 내가 되고 직장의 직책이 곧 내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왕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하수에로는 전국 127도를 다스리는 제국의 왕이었습니다. 나라의 치세를 자랑하고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각 지방관들을 불러 모아서 잔치를 벌입니다.
하루 이틀의 잔치가 아니라 장장 6개월간 이어진 잔치였습니다. 6개월 동안 대장정의 잔치를 하고 왕후 와스디도 자신의 휘하에 있는 여인들을 불러 모아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왕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제칠 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왕후를 자랑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 입장에서는 술 취한 사람들 앞에 불려나가서 사람들의 눈요깃감이 되는 것이 왕후의 위신을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거절합니다. 12절입니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왕은 왕후의 거절을 듣고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 듯 했습니다. 이 일이 발단이 되어서 왕후 와스디는 폐위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과연 이 일이 왕후를 폐위할만한 일입니까? 과연 이 일이 왕이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야 될 일입니까?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인격 대 인격으로 생각해보면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왕은 왜 이렇게 화를 냅니까? 자신에 대한 도전, 제국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곧 나라인데 나를 거절하는 것은 나라에 대한 거절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기 자신이 국가였습니다. 자신이 페르시아 제국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정체성은 국가였고 제국이었습니다. 왕의 말에 합리적인 거절을 하는 사람도 용납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왕이 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음을 기억하고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 정체성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빈부귀천 없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요 딸들입니다. 사람은 인격 대 인격으로 거절할 수도 있고 청할 수도 있습니다. “감히 당신이 나를 거절하다니, 감히 네가 나에게 이런 청을 하다니”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정체성이 사라졌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인격 대 인격으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인격이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이 땅에 보내주신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함부로 사람을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받는 인격으로 대할 때 사회공동체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악행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인격으로 대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아들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녀인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모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옵소서.
성경별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
10 | (에스더 10장) 토브와 샬롬 | 정지훈 | 2018-09-12 | 1484 |
9 | (에스더 9장) 기억을 전승합시다 | 정지훈 | 2018-09-11 | 1168 |
8 | (에스더 8장) 작은 성공에 도취되지 마십시오 | 정지훈 | 2018-09-10 | 1290 |
7 | (에스더 7장)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 정지훈 | 2018-09-07 | 1287 |
6 | (에스더 6장)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 | 정지훈 | 2018-09-06 | 1150 |
5 | (에스더 5장)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 정지훈 | 2018-09-05 | 984 |
4 | (에스더 4장) 자리값 하는 사람 | 정지훈 | 2018-09-04 | 1088 |
3 | (에스더 3장) 악의 결합 | 정지훈 | 2018-09-03 | 1087 |
2 | (에스더 2장)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 정지훈 | 2018-08-31 | 1414 |
1 | (에스더 1장)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정지훈 | 2018-08-30 | 119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