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

(호세아 10장) 벧엘과 벧아웬
2020-06-18 06:50:00
정지훈
조회수   1028

1. 말씀묵상

고대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이제는 흔적만 남아서 유적지가 되고 사람들에게는 옛날 영화만 기억하게 하는 도시들이 여럿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찬란하게 꽃 피웠던 아테네, 가는 곳마다 유적지로 발 닿는 모든 곳이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게 하는 로마, 거대한 피라미드를 볼 수 있는 이집트 등은 그 옛날 선조들의 영광스러운 과거가 지금은 후손들을 위한 관광지가 된 도시들입니다. 우리는 이 도시들을 보면서 과거의 영광이 대단했음을 느끼는 동시에 이제는 흔적만 남은 유적지의 애잔함을 느낍니다. 우리가 ​고대 도시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이렇다면 하나님께서 흔적만 남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시는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옛날에는 믿음이 뜨거웠고 열정이 충만했으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찼던 사람이 이제는 열정도 순수성도 사라지고 껍데기와 형식만 남았다면 그런 사람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애잔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과거의 영광만 남은 북이스라엘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는 아름답고 기대가 됩니다. 포도나무 열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열매 자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열매를 가공한 식품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특히 포도주는 잔칫집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음료입니다. 이스라엘이 열매 맺는 아름다운 포도나무라면 그들의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도나무 열매를 많이 맺을수록 제단을 만들고 주상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제단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이고 주상은 바알의 형상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매를 맺게 하셨는데 그들은 바알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요? 바알은 물질의 우상입니다.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누릴수록 더 많이 누리고 싶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로보암 2세 시절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부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처럼 부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두 마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껍데기는 경건으로 무장된 가짜 그리스도인이고 속은 탐욕스러운 바알의 자식으로 살고 있는 이중성을 두 마음을 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몸은 성전에 있으나 마음은 바알에게 달려가고 있는 자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가지기를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두 마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많이 가지든 적게 가지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 자체로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감격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해야 하는데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원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탐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종 이권에 개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직분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중적인 사람들, 두 가지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3절 말씀이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내가 이래도 되나? 직분을 가진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도둑질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십니다. 점점 간이 커져갑니다. 큰 도둑이 됩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이제는 대놓고 도둑질을 합니다. 대놓고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방향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심판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화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때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내던져짐을 당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심판인지 모릅니다. 유기의 심판, 내버려둠의 심판, 심판 날 단 한 번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고 무서운 심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이중성을 가진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애통함이 5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벧아웬의 송아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벧아웬은 벧엘을 대치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 1세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낸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부터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과 단에서 금송아지를 섬겼습니다. 벧엘의 송아지를 벧아웬의 송아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벧아웬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한 작은 도시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의 뜻이 중요합니다. ‘벧’은 집이라는 뜻이고 ‘아웨’는 허무, 공허,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벧아웬은 허무의 집, 공허의 집, 죽음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벧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첫 사랑의 도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 야곱이 벧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주하던 길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꿈에 천사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고 보좌 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첫 사랑의 장소가 벧엘이었습니다.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야곱은 벧엘에서 믿음의 언약을 갱신합니다. 그런데 벧엘이 이제는 벧아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벧엘이 허무의 집, 공허의 집, 죄악의 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애통해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는 여전히 벧엘에 거하고 있느냐? 아니면 벧엘이 변해서 벧아웬이 되었느냐? 각자 우리 믿음의 현 주소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첫 사랑의 아름다운 시절, 벧엘의 자리에 지금도 서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허무의 집, 공허의 집, 죄악의 집, 벧아웬에 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물질과 탐욕을 위해서 허무의 집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믿음의 현 주소를 살피시고 다시 벧엘로 올라가시는 지혜로운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첫사랑 벧엘의 자리를 기억하겠습니다.

2) 벧엘을 벧아웬으로 변질시키지 않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벧엘을 떠나 벧아웬으로 가지 않으며 하나님 은혜의 자리에 거하기 원하오니 은혜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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