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사람들이 하는 언어는 말과 말씀으로 표현됩니다. 말은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를 비롯해서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도구가 됩니다. 말씀은 웃어른들이 아랫사람에게 지혜와 권위를 담아서 전하는 언어입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에게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는 도구입니다. 즉 신적 언어를 우리는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교회공동체는 말이 많은 곳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에 어찌 말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말이 말로 끝나지 않고 말썽을 일으킬 때입니다. 말이 말썽으로 이어지는 곳은 하나님의 말씀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숨 쉬는 공동체는 인간의 말이 부분적으로 있다 하더라도 흘러가는 말로 끝나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살아있지 않은 공동체는 문제가 생깁니다. 말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말썽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말썽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갈라놓고 말을 통해서 서로를 미워하게 하여 공동체를 파멸로 몰아갑니다. 이것이 사탄의 올무요 전략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음해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말의 올무를 던집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께 말의 올무를 던지는 집단이 등장합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말의 올무’라는 말이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부풀리는 말의 올무, 별 것 아닌 것을 크게 문제 삼는 말의 올무,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사람을 괴롭히고 심지어 매장시키는 말의 올무도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항상 이런 종류의 말의 올무가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은 어떤 말의 올무를 던졌을까요? 16절을 보십시오.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정치권력인 헤롯 당원들, 종교권력인 바리새인들은 헤롯당원들과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모두 예수님께 말의 올무를 던졌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던지는 첫 번째 말의 올무는 교만을 불러일으키는 칭찬입니다.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참되시고 거리낌이 없습니다. 진리의 도로 백성들을 가르치십니다. 이들이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꺼리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의 시체에 손을 대어 살리고,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피하는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시는 일도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진리를 선포하셨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은 왜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모두 칭찬에 약합니다. 자기를 칭찬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칭찬은 칭찬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칭찬이라는 씨앗이 듣는 사람 마음에 뿌려지면 자라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데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칭찬을 받으면 그 칭찬이 자가 발전해서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시지만 우리는 칭찬에 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사탄이 던지는 말의 올무에 걸리지 않으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칭찬을 당연히 여기면 칭찬이 자라 교만이 되고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대한 악으로 성장합니다. 이것이 사탄이 던지는 첫 번째 말의 올무입니다.
이제 그들은 두 번째 말의 올무를 던집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이들이 진짜 묻고 싶었던 것 것이고 던지고 싶었던 말의 올무는 세금문제였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하면 매국노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바치지 말라고 하면 현행법을 어긴 자로 고발할 것입니다. 주님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말의 올무를 던지는 사람의 특징을 보면 피할 수 없는 상황논리로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즐깁니다. 이것이 사탄이 던지는 고도의 말의 올무 전략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19절에서 21절을 보십시오.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명답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칙에 의거해서 대답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세금 내는 것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가이사의 것은 당연히 가이사에게 바쳐야 합니다.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니 형상의 주인인 가이사에게 바치고 너희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니 너희는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원칙에 근거하신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지혜와 감동을 줍니다.
어떤 일이든지 원칙대로 하면 말의 올무에 빠져들 일이 없습니다. 여기서 원칙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원칙도 아니요 세상의 법에 의거한 원칙도 아닙니다. 이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의 올무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지혜는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 됩니다. 사탄이 어떤 궤계를 부리든, 세상이 어떤 유혹을 던지든 우리에게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복잡하게 계산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원칙으로 삼고 그 원칙에 근거해서 살면 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원칙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칭찬도 늘어놓고 비난도 퍼부을 것입니다. 칭찬한다고 해서 교만을 더하지 마시고 비난을 당한다고 해서 의기소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면 될 것입니다. 어떤 유혹이나 말의 올무에도 말씀의 원칙에 근거해서 살아가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복된 하루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칭찬에 취해서 교만으로 흘러가지 않겠습니다.
2) 사탄이 던지는 말의 올무를 말씀의 원칙으로 이겨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우리를 성령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따르며 말의 올무를 극복하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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