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

(누가복음 19장)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2020-12-17 06:50:00
정지훈
조회수   702

1. 말씀묵상

어릴 때 동네 어귀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는 편을 갈라서 시합합니다. 주먹 야구를 하든지 골목 축구를 하든지 편을 나누어야 됩니다. 시합이나 놀이는 편을 나누는 것이 정상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낳습니다. 성향이 같은 사람, 기질이 같은 사람,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이 내 편이 되고 삶의 궤적을 달리하는 사람,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 기질과 성향이 다른 사람이 상대편이 되어 내 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틀렸다고 한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 사회가 극단의 편 가르기로 상처 입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입으로는 국민 통합과 하나 됨을 말하지만 사실은 편 가르기를 함으로써 그 텃밭 위에 그들의 위치를 더욱 견고하게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극단적인 분열로 분노하고 다른 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악순환의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편 가르기가 없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편 가르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를 바라보는 이웃과 주님의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1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은 여리고 성에 머무를 생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신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는 큰 도시입니다. 요단 동편에서 요단 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 만나는 첫 번째 도시입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리고를 지나야 됩니다.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번화하고 큰 도시였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 여리고를 들어가 지나가는 중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이유는 십자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면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큰 사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한시라도 빨리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리고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리고 성에는 주님을 고대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고 부자였습니다. 여리고라는 큰 도시, 상업이 활발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에 세리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재산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지만 그에게는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3절과 4절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주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인파를 뚫고 주님을 보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체면 불구하고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주님을 보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애초에 주님과 대화하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얼굴을 먼발치에서 한 번이라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행이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돌 무화과나무 아래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의 눈과 삭개오의 눈이 마주칩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주님의 눈과 삭개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주님은 삭개오의 눈에서 간절함을 읽어내셨습니다. 주님을 갈망하는 삭개오의 눈을 보았습니다. 외로움 가운데 살며 주님을 한번이라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눈빛을 읽어내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속히 가야했지만 삭개오를 불러 내립니다.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너무 기쁜 나머지 속히 내려와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과 삭개오를 보고 있던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사람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이미 그들의 마음에서부터 삭개오와 자신의 삶을 구분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의인이 됩니다. 그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선한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을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편 가르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삭개오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어낼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세리이고 죄인이라고 단정 짓고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편 가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릅니다. 삭개오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와 동네 사람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여기고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주님은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장벽들, 중간에 막힌 담을 예수님의 육체로 허물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고 있었던 성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겨져 나가버렸습니다. 그 후로는 어느 누구도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직분이 담이 되지 않습니다. 혈통이 사람을 갈라놓는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헬라인이나 그 어떤 사람들이라도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선을 긋고 편 가르기를 좋아합니다. 사탄이 부추깁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속에서 속삭입니다. 저 사람은 너와 다른 사람이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허물어 놓은 장벽을 왜 다시 쌓으려고 하느냐? 오늘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 오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깨닫고 그들과 소통하며 사랑하며 지내는 복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사람을 편의로 나누지 않겠습니다.

2)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품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원하오니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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