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

(잠언 30장) 중용의 덕
2019-08-20 06:50:00
정지훈
조회수   994

1. 말씀묵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삶의 지혜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중용[中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덕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철학자 주자는 ‘예기’에서 중용 편을 따로 떼어 책으로 펴낼 만큼 중용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중용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과유불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아니함만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과유불급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중간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중용을 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용을 오해한 것입니다. 중용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만한 보편적인 말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오늘 읽은 잠언 30장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추고 살아가야 할 중용의 덕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사람들도 중용의 덕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중용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굴의 잠언을 통해서 깨닫기 원합니다. 잠언 29장까지는 솔로몬의 잠언이었습니다. 30장은 아굴의 잠언입니다. 아굴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1절에서 아굴은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아굴은 자신의 가족 관계 정도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2절과 3절에서 조금 더 겸손하게 표현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그는 자신을 가리켜 ‘짐승, 지혜를 배우지 못한 사람,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겸손의 표현입니다. 30장 말씀 전체를 읽어보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깊이 있는 기도와 지혜자의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의 잠언 중에서 말씀의 중용을 보겠습니다. 6절입니다.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사람들의 잘못된 습관, 못된 습성 중에 하나는 말에 말을 더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하다보면 자신의 생각을 더하고 자신의 생각이 더해지면 원래의 말에 다른 말이 붙어서 눈덩이 같이 불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에 있어서 중용을 의미합니다. 

에덴에서 시작된 죄는 말씀의 중용을 지키지 못한데서 출발했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더했습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뱀의 말이 더해졌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는데 하와도 그 말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다시 뱀에게 전했습니다. 그때부터 말씀의 변질이 일어나고 말씀의 변질은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있는 그대로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수용하는데 꼭 필요한 중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해석에 집착하다보면 이단적 가르침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담백한 말씀,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심판을 선포하면 심판을, 복을 선포하면 복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말씀의 중용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우리의 심장과 폐부를 찌르는 듣기 힘든 말씀도 있습니다. 그 말씀도 우리는 그대로 수용해야 할 것이고 복을 선포하는 말씀도 그대로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이나 듣기 싫은 말씀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의 중용이 우리의 영혼을 살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치우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취사선택해서 듣고 읽는다면 이런 행위는 우리의 영혼을 잠식시키고 결국은 사탄에게 영혼을 내어주게 될 것입니다. 부디 말씀의 중용을 잘 지켜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삶의 중용입니다. 7절과 8절입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삶의 중용을 위해서 아굴은 두 가지 기도를 가르칩니다. 헛된 말, 거짓말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오직 필요한 양식만 공급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두 번째 기도, 즉 가난도 부함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9절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헛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삶의 중용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부자들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힘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첨하는 말, 진실을 숨기는 거짓말, 헛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중용을 지키지 못하고 치우친 사람들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중용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치우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왜 진리를 말하지 못하고, 왜 사람들한테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진실을 말하지 못할 때 내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면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상황에 치우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사람과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보다 정의와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중용입니다. 중용은 적당하게 중간만 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고 헛된 말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바른 말만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용의 덕을 지키며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부를 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부를 추구하는 것도 브레이크가 있어야 합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끊임없이 부를 추구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파괴할 것입니다. 물질이 하나님을 모른다 하는데 까지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게으름도 우리가 막아야 할 것입니다. 게으름 때문에 우리가 가난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성실하고 진실하게 삶의 중용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아굴은 하나님께 중용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삶의 중용을 위해서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사람들 앞에서 치우쳐 헛된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삶의 중용으로 자신을 지키고 하나님께 영광 되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중용, 삶의 중용을 잘 지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말씀의 중용을 지켜서 있는 그대로 말씀을 받고 실천하겠습니다.

2) 삶의 중용을 지켜 치우치지 않고 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한 길을 걸어가며 치우치지 않는 인생을 살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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