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내려오는 말 중에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자주 경험합니다. 악한 사람의 끝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합니다. 뿌린 대로 거둘 뿐입니다. 악을 뿌렸으면 악으로 거둘 것이고 또 사람을 해롭게 했으면 결국 하나님도 그를 돕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안에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을 심판 날 책임지실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의 마지막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사실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남유다가 망하는 장면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결국 예루살렘이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을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도자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도우셨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의 신정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같은 위대한 왕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고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했고 성전에서 예배드렸으며 하나님과 아름다운 소통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위정자들부터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나라는 반으로 쪼개집니다. 그 후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합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할 왕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시드기야 왕은 파선한 배를 버리고 도망간 비겁한 왕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유린되는 이 때 끝까지 결사 항전해야 할 사람이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비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의 마지막을 어떻게 다루십니까? 6절과 7절입니다.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군사를 풀어서 그를 생포합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왕자들을 남김없이 살해했습니다. 자기 눈 앞에서 자식의 죽음을 보는 아버지의 고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일이 끝나고 나서 바벨론은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합니다. 마치 짐승처럼 그를 끌고 바벨론으로 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결정 장애에 빠져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친 바벨론파와 친 이집트파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될지 모르는 미련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끊임없이 주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을 따라서 살길을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이 두려워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자리에 서서 심판 날이 곧 다가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을 마치는 그 날에 하나님께 버림받는 미련한 백성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혼란 가운데에서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느부갓네살 왕이 점령군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합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한 선지자가 있는데 그가 예레미야이니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고 그가 어떤 말을 하든지 그의 말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라가 망할 때 선지자 예레미야를 기억하셨습니다. 그가 평생 동안 대접받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돌팔매질 당했으며 모욕과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방인의 왕과 점령군 사령관이 그를 선대합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외에도 우리도 기억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억에 있었습니다. 15절과 16절입니다.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 18절도 보십시오.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구스 사람 에벳멜렉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나라가 망할 때 구스 사람 에벳멜렉을 살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스 사람 에벳멜렉은 어떤 사람입니까? 38장에서 그는 목숨을 걸고 시드기야 왕에게 가서 예레미야를 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사람들에게 매 맞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진창에 빠졌습니다. 성 안에는 떡이 떨어져서 진창에 그대로 두면 예레미야는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스 사람 에벳멜렉이 그 모습을 보고 왕에게 가서 간청했습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건져주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며 내시였습니다. 내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성전에도 출입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개처럼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건지라고 하셨고 그는 온전히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왕이었던 시드기야의 마지막과 내시이며 이방인이었던 에벳멜렉의 마지막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내 신분이 어떠하든,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명예와 물질의 정도가 어떠하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 되고 정결한 삶을 살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부디 우리는 이 짧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역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고 거리낄 것이 없는 믿음의 선택을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시드기야의 길이 아닌 에벳멜렉의 길을 가겠습니다.
2)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은혜가 충만한 삶을 인도하여 주시며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에벳멜렉의 인생을 살도록 도와 주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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